본문 바로가기

[고용시장 절벽] 코로나로 심화된 청년의 우울, 그리고 요즘 사회를 논한 책들

by 얀얀이 2020. 11. 11.

내가 어렸을 때 즐겨 보던 2003년 방영된 논스톱4에서 고시생 앤디가 매번 읊는 "조용히 좀 하세요! 아시다시피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이 40만을 넘어 50만을 육박하는 이때에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라는 대사가 유행이었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청년실업은 100만을 넘었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나 청년실업, 고용시장 절벽 같은 건 이미 새롭지도 않은 얘긴데, 2020년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그 정도가 심했다. 경제위기 10년주기설이라던가 중국이 세계 패권을 잡기 위한 공작이라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는데 하여간 청년들은 정말이지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작년부터 자살 사건이 끊이지 않는데 올해 이 자살률이 급증할까 우려되기도 한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연예인들의 자살사건이 특히 사회에 충격을 주곤 한다. 직업이 연예인이건 비연예인이건 삶과 죽음 앞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인간으로서 공감되는 아픔이 있는 것이다. 경제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사람보다 가족이나 사회에서 받은 상처로 죽음을 택한 사람이 많다. 이것은 결코 자살 한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은 모두 사회의 부분이며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우치는 경종으로 삼아야 한다. 고용 절벽 상황에 더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 낸 코로나19로 인해 우울증이나 소위 멘탈 깨지는 경우가 많이 양상된다고 보인다. 코로나 블루말이다.


2011-12년에는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터져나오는 청춘들의 아픔에 대한 기성세대로서의 위로를 건냈으나 2014년 유병재가 SNL에서 이를 "아프면 환자지"라고 유머있게 비꼬면서 청년세대의 공감을 얻으며 무참히 비판받았다. 사회 구조에 대한 담론 보다는 개인의 성장통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비판받았다고 생각한다.  

 

이후에는 또 피폐해진 정서를 달래주기라도 하듯 힐링 서적이 열풍이었다. 많은 인기를 얻었던 책 중에는 백영옥 작가의 '빨강 머리 앤이 하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 백영옥 작가의 책은 작가로서 살아 온 젊은 날의 아프고 불안한 날들을 읽으며 공감의 정서와 결국은 그 시기를 지나 온 작가의 담담한 독백을 빨강머리 앤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위안으로 엮어내서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이후로 귀여운 캐릭터 표지에 짧은 문구들이 쓰여진 책들이 우후죽순 출판되었는데 개중에는 정말이지 책이라고 할 수 없을 법한, 싸이월드 감성글같은 수준의 책들도 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같은 청년 개인에게 이겨내라고 하는 주제보다, 현재 사회가 도대체 왜 이렇게 아픈가하는 원인에 대한 사회 담론을 다루는 책들을 2017년-2018년에 몇 권 읽었다. 대표적으로, 엄기호 작가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같은 책. 엄기호 작가는 연세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는데, 청년 세대가 처한 사회 현실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집필했다. 그는 또한 '노오력의 배신' 이나 '공부중독' 같은 책을 통해서 공부만 죽어라 노력하는 삶을 반강요받아 온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이후 한동안 이 이야기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개인이 노력을 안해서가 아니라, 수급 불균형이 된 지 오래인 노동 시장에 대해서. 이 문제는 개인이 더욱 자신을 몰아부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어떤 이가 죽어라 노력해서 번듯한 직장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사회 대다수의 청년들은 낭비가 될 노력을 하게 되는 시스템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으니 말이다. 

 

자본주의의 법칙이라면 아주 끔찍하게 돌아가는 미국 사회에서는 청년 실업이나 고용 시장 구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궁금증으로 읽게 된 책은 '말콤 해리스- 밀레니얼 선언(Kids These Days)'이다. 이 책은 2019년 9월에 출판되었으니 갓 1년이 넘은 책인데, 미국 사회도 한국 사회의 양상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이 책에서는 양질의 일자리를 위해 과도하게 교육받은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원제와 달리 한국에서 번역되면서 제목이 무언가 거창한(?) 느낌을 주는데, 이 책은 유발 하라리와 같은 인류학자가 쓴 '21세기를 위한 제언'같은 책도 아니고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도 아니지만 그런 느낌을 주기 위해 붙여진 이름같다. 이 책은 오히려 신랄하게 작금의 고용시장과 정치를 내용인데, 원제도 학술적이기 보다는 좀 더 튀는 느낌을 주는 "요즘 애들"이다.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개인주의적이고 경쟁밖에 모를까? 같은 기성세대의 평가를 시작으로 밀레니얼이 처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엄기호 작가의 책에선 이러한 시각을 '요즘 애들 개새끼론'이라고도 하는데 2020년에 와서는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이러한 태도가 '라떼'라는 유행어로 풍자되고 있다. 나도 이러한 라떼론에 황당함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는데, "요즘 사람들은 왜 결혼도 안하고 애도 안낳으려고 하는 지 모르겠다.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고 평하는 50대 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본인은 자녀도 낳고 돈도 벌고 시댁도 챙기면서 살아왔으며 자녀를 낳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고 그러한 가치 있는 가족의 형성에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인생론이었다. 글쎄, '요즘 애들'의 입장에서 이러한 지적은, 단지 '안 속아요'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왜냐, 연애, 집, 결혼 포기라는 소위 3포 세대가 진화해서 7포 세대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현실이기도 한데 가족의 가치 같은 건 나 한 사람의 생존도 책임지지 못하는 현실에선 그야말로 남의 얘기처럼 들릴 뿐이다. 

이전 세대는 자신이 '루저'라는 사실을 쿨한 훈장처럼, 술집에서 시비가 붙고 누군가와 한판 싸운 후 생긴 콧잔등의 흉터처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반면 아무리 세일을 해도 팔리지 않는 재고 신세가 된 밀레니얼들은 자신이 '루저'라는 사실 앞에서 존재론적 위기를 느끼게 된다.

말콤 해리스- 밀레니얼 선언 중

나는 이러한 세대 갈등의 본질은, 청년세대의 나약함을 비판하지만 정작 어쩌다 그들이 나약해졌는지를 파악하는 데 실패한 데서 오는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기성세대가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이기적이냐"거나 "왜 이렇게 나약하냐", "노력을 하지 않는다", "나 때는 더 힘든 상황이었다"고 하는 말들은, 서로 다르게 키워졌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밀레니얼 선언'에서 다뤄지는 부분이기도 한데, 밀레니얼 세대에 와서는 인간의 주된 삶의 형태가 대부분 학교-집만 반복하고 모든 활동이 경쟁에서의 우위에 서기 위해 수단적으로 이뤄진다는 특성을 꼬집는다. 하교 후 친구들과 노는 것은 바보같은 소리이고 다들 걸음마를 뗄 떼부터 학원이네 뭐네 해서 뭔가를 배우고 남들보다 잘 하게 교육받는 현실이니 말이다. 또한, 미국 사회에서 이러한 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찍이 학교에서부터 처벌과 경찰서로 인계하는 등 아주 사소한 일탈로도 학교(로 대변되는 시스템)로부터 가차없는 격리를 가속화하기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지 않을 거라면 넌 낙오자야"같은 메세지를 어린 시절부터 주입받는 것이다. 실제로 감옥에 가두거나 감시하면서 까지 말이다. 이것은 모두 양질의 일자리를 경쟁하여 얻겠다는 목표를 위한 일이다. 학교는 높아진 대학 교육으로 인해 등록금을 번다. 그리고 회사들은 그들이 직원을 교육하는 비용을 대지 않고서도 스스로 낮은 급여의 인턴십으로 기꺼이 자신을 "훈련" 하려는 젊은 이들을 얻는다. 더 공부하고 더 훈련해서 경쟁자들보다 우위에 있기 위한 일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사회 구조다. 

 

'요즘 애들'이 아니라 '요즘 사회'가 논의의 주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태어나서 사회에 편입되고 생존을 위해 사회 시스템 안에서 요구받는 자질들을 기르게 된다. 대다수는 그렇게 살아 간다. 농업 혁명 시기의 사람들과 현대의 자본 주의 시스템 내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가치관도, 얻을 수 있는 재물이나 결혼 및 가족 관계도 다를 수 밖에 없다. 개인별로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모두 그 사회를 벗어나 개별로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각 사회의 민중들은 그 사회에 존재하는 정치적 담론과 사회적 담론이 있다. 이 사회는 국제적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불평등의 담론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이 그 시기에 마침 청년인 세대에게 시대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노력으로 없앨 수 없다. 한국의 전태일의 노동운동이나 미국의 러다이트 운동, 반전운동, 미국의 성소수자 인권 및 페미니즘 운동, 한국 민주화 운동, 현대의 페미니즘을 표방하여 표를 얻으려는 정치 등 각 국가와 각 시대는 각자 해결하려는 과제가 다르다. 

 

바로 지금 이 시대 한국 사회가 직면한 사회담론은 고용 절벽, 부의 불평등, 언택트 사회로의 이행, 넘치는 고학력자, 인구 절벽 같은 문제들이다. 이는 일제 타도, 공산당 타도, 독재 타도 같은 특정 거대 세력에 대항하는 대상이 존재하는 운동이 아니다. 대항하는 대상이 있다면 하나로 뭉친 특정 그룹이 아니라, 분산된 개인들이 존재하는 사회 시스템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정치 담론도 미국의 공화당-민주당으로 대표되는 경제 담론과 닮아 간다. 밀레니얼 선언은 어느 정도 엘리트 자본주의를 해결하기 위한 소위 미국 진보 성향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덧붙여, 밀레니얼 선언에도 언급되는 케빈 루스- 영머니는 금융계에 입성한 엘리트 사회초년생들을 인터뷰하는 사실을 기반한 저널리즘+픽션의 형태를 띠는데, 2011년 미국에서 진행된 Occupy Wall Street 월 가를 점령하라 시위 전후 미국사회에서 떠오른 금융계의 부패와 시스템적인 착취의 면면을 보여주는 책이라 읽어 볼 만하다. 

 

요즘은 그저, '이게 현실인 걸 어떻게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짱돌을 들고 파괴할 대상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코로나19로 인해 모인이나 연대와 같은 집단 개념이 더욱 약화되고 개인들이 파편화되는 시대적 상황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그저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무력감과 이 답답한 상황이 빨리 지나가주길,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더 단단히 단련되길 바랄 뿐이다. 또한, 지금같은 상황에서 방송계에서 논스톱4와 같은 코미디가 현실을 풍자해준다면 엄청난 인기를 얻을텐데 그런 시트콤이 다시 부활하면 좋겠다. 아니, 그러기엔 현실이 너무 암울한가? 그러나 블랙 유머로라도 이 암울함을 웃어넘기기라도 해야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텐데 요즘은 웃음도 현실을 생각하면 씨가 마르는 것 같다. 예전엔 ㅈ같은 현실이라고 욕했지만 그런다고 변하는 건 없으니까, Don't take it too seriously라고 생각할 수 밖에. 누가 날 좀 웃겨주세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