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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장강명 소설 <표백>, <한국이 싫어서> 청년의 주도적 역할이 불필요한 표백사회에서 길 잃은 청춘들

by 얀얀이 2020. 11. 16.
<표백> 책 속 문장 P. 77-78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 이상 없어.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 건 행동 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표백

2011년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240여 편의 경쟁작을 물리치고, 예심 심사위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본심 심사위원들의 추천을 통해 당선된 작품이다. 한국 문학뿐 아니라 사회 전반

www.aladin.co.kr

 

작가 장강명은 동아일보에서 11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 2011년 <표백>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받으며 본격적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요즘만의 일인지, 언제나 그래왔는지 모르겠지만 길 잃은 청춘들, 헬조선을 떠나고 싶어하거나, 살기위해 경쟁하는 그런 청춘들을 만들어 낸 사회를 배경으로 이 소설은 전개된다. 불과 몇년 전 금수저 흙수저 등 수저계급론과 헬조선, 이민을 떠나는 사회 현상이 조명되었다. 언론에서는 청년이 느끼는 불평등과 박탈감을 강조했고. 표백에서는 인물들이 이러한 사회에 저항한다. 아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스포가 될까봐 적지 않는다.)

 

왜냐하면, 더 이상 청년들의 존재 가치가 기성세대가 만들어 둔 사회의 틀에 적응하는 것 외에는 인정되지 않는, 더 희어 질 수 없는 "표백 사회"이기에 그에 대한 사회 운동의 하나로서 그런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물론 소설이기에 그렇게 하면서까지 이 사회에 반항한다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사실 무서운 일은 여기서조차 현실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는 그럴듯한 현실성이 있는 + 꾸며진 스토리를 아주 좋아하는데, 그래서 이 책을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대책없는 낙관주의로 (아프니까 청춘이다처럼) 가는 내용 보다는 비관적이되 객관적인 스토리가 더 매력 있게 다가오기도 한다. 물론 비관적인 것은 정도가 심해지면 사는데 좋을 건 없다. 따라서 본인의 중심과 균형적 시각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튼 <표백>은 청년 세대가 지쳤다는 것을 위로하고,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기자의 눈으로 담아놓은 내용같다. 이미 기자로, 작가로 사회에서 충분히 한사람 몫, 혹은 그 이상을 해내고 있지만 청년세대가 느끼는 박탈감이나 무력함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 해주어서 고마운 작가이다. <영 머니>를 쓴 역시 기자 출신 작가 케빈 루스처럼 청년 세대가 맞닥뜨린 사회의 부조리함을 파악하고 전달하는 이야기꾼이 한국사회에도 있다는 점이 좋았다. 

 


장강명 작가는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도 발표했는데 대학생들에게 한 때 엄청 인기 있는 책이었다.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공감의 정서 때문이 아닐까? <한국이 싫어서>에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결혼과 육아에 대한 압박, 집단주의, 미래를 위한 끊임 없는 경쟁, 여유없는 사회 등 한국 사회에서 벗어나 해외에서 아르바이트 수준의 일을 하면서 자신과 사회에 부딪혀 나가는 내용이다. <한국이 싫어서>는 딱히 엔딩이 속시원한 기승전결이 명확한 스토리라기 보다는, 왜 그런 삶을 사는지에 대해 이해해보려는 시각을 가진 한국 사회 탈출자 관찰기 같은 느낌이었다.

 

한국을 떠나서 잘 살게 되었다는 동화처럼 속시원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좋았던 점이라면 한국을 떠나 산다고 해서 한국 사회의 탈선자라는 시각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거다. 탈선자로 보는 사회적 비난도 책 속에 있고, 그에 대한 주인공의 대응도 책 속에 쓰여있다. 사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지만, 어떤 종류의 좋은 점을 선택하고, 어떤 나쁜 점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지도록 하자는 경쟁사회에서 지쳐버린 밀레니얼적 시각이 담겨있달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인터뷰를 통해 파악한 다수의 인물의 삶을 계나라는 하나의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엮어 놓은 이야기인데, 오히려 생략된 내용이 있는 것 같아서 <영 머니>식의 여러 명의 인물들의 각기 다른 상황, 배경, 경험 이야기도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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